뷰티산업 전문잡지로 발행되었던 코스모비즈는 2020년 1월호를 끝으로 인쇄판 발행을 중단했습니다. 출판을 시작한 지 만 10년 4개월 만의 일입니다. 이와 함께, 버지니아 에난데일에 소재하던 사무실도 폐쇄하였습니다. 시간이 허락 할때마다 그간 발행했던 주요 기사를 홈페이지에 저장해 놓고 필요한 분들이 쉽게 찾아 보실 수 있도록 정리해 두겠습니다. 가끔이라도 업계의 주요사안에 대한 기사는 홈페이지에 게재토록 하겠습니다.

저에게 코스모비즈는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40대와 50대의 정열을 쏟아부은 비영리 연구소입니다. 허망하게 느껴지는 경험도 있었지만, 미 전국 7,000여 소매점의 권익을 위해서는 광고 수익을 포기하고 거침없이 기사를 제공해 드렸다는 자부심은 큽니다.

어느 소매점이 겪은 억울한 사정을 보도한 덕에 고소라는 아픈 고통도 겪었습니다. 약 4년간 감당하기 어려운 변호사비를 내면서도 억울한 소매점 사장님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더는 변호사비를 감당할 처지가 못 되어 중간에 방어를 멈출 수밖에는 없었지만, 그마저도 저에게는 큰 보람입니다.

이제는 코스모비즈가 걸어왔던 지난 14년의 세월을 백서로 남기고 역사 속으로 물러나려 합니다. 잡지를 무료로 배포해 드렸음에도 구독료라는 명목으로 후원해 주신 전국의 100여 개 소매점 사장님들과 가끔은 지나치는 길에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반갑게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발행인, 장현석

코스모비즈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2005년 가을, NBSDA(미주뷰티서플라이 총연합회)는 뉴저지 포트리의 어느 호텔에서 이사회를 개최했다. 당시 총회를 이끌었던 이상호 총회장과 차기 회장으로 사전 선출된 손지용 수석부회장이 총회의를 개최한 자리다. 이 두 회장님은 광고 수익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존 잡지의 한계로 인하여 회원들의 불만 사안이 바르게 알려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뉴스레터 형식의 협회지라도 발행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본 기자는 16페이지 분량의 샘플 뉴스레터를 만드는데 봉사한 바 있다.

2008년 겨울, 총연합회 이사회는 협회지 발행을 결의하였다. 이듬해인 2009년 7월, 코스모비즈는 별도의 비영리법인으로 등록하고 최철호 편집장 등 유급 직원 5명이 사무실을 꾸미고 창간을 준비하였으며 총연합회와 정식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총연합회와 맺은 계약 내용은; (1) 코스모비즈는 총연합회 공식 잡지로서 광고 판매를 의식하지 말고, 소매점의 권리를 옹호해야 하고, 소매회원들의 입과 귀가 되어야 한다. (2) 총연합회는 코스모비즈의 원만한 운영을 위하여 광고 판매 등을 지원할 책임이 있다. (3) 이윤이 발생할 경우, 인건비, 인쇄비, 우편료, 사무실 경상비 등 실비를 제외한 나머지 전액 가운데 일부는 총연합회에 기부하여야 하고, 나머지는 뷰티산업을 위한 교육, 연구, 홍보 등에 전액 사용하여야 한다. (4) 코스모비즈 발행에 따른 모든 경비는 코스모비즈가 자체 부담하여야 하고, 운영 과정에서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총연합회에는 아무런 금전적 책임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첫발부터 위기가 찾아오고

사무실 임대계약이 완료되고, 모든 편집 및 연구진이 고용되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코스모비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창간호부터 위기를 맞았다.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총연합회 내부 인사들 간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매업자들의 권익을 위한 잡지라면 도매업체에는 위협적인 내용의 기사가 아무런 통제 없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몇몇 도매업체의 반발과 압력이 총연합회 측에 전달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전국 유수의 도매업체에 코스모비즈의 출범 준비를 알리고 여러 도매업체를 방문하여 광고 후원을 부탁했다. 상당수 도매업체가 문전 박대하면서, “총연합회 측은 코스모비즈가 협회지가 아니라고 부정하던데요. 광고를 받으시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하고 오시라”는 충격적인 답을 들었다. 다급히 총연합회에 사실을 확인했다. “불과 한두 달 전에 계약서에 서명까지 해놓고, 코스모비즈가 협회 공식 잡지가 아니라고 부정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명확한 답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냥 없던 일로 하자”라는 허망한 답만 받았다.

그럴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다. 사무실 임대 계약을 이미 마쳤고 사무실 가구, 기기 등을 모두 준비했는데 그 책임을 어쩌란 말인가? 이미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코스모비즈로 자리를 옮긴 직원들은 또 어찌하라는 것인가? 그중에는 모두가 알만한 한국의 주요 언론사 기자 출신이 4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만일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들의 이력에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게 될 참담한 상황이다. 나머지 두 사람도 워싱턴 지역 유력 일간지에 사표를 내고 합류했는데 그만두고 나온 신문사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내몰렸다.

7월에 계약을 마치고 9월까지 사무실 설립을 위해 분주했던 터라 총연합회 누구와도 갈등을 빚을 기회도 없었다. 아직 창간호도 발행하지 않은 상황이었던 터라 기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총연합회 내부의 갈등이 애꿎은 코스모비즈에 불똥이 되어 떨어졌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코스모비즈는 비영리기구라서 돈을 벌고 싶어도 벌 수조차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총연합회가 설립자본을 지원해 준 것도 아니다. 그럴 경제적 여력도 없던 터라 단 1불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계약조건도 위에서 밝힌 것처럼 총연합회 쪽으로 일방적이다. 이것은 총연합회 측의 요구로 만들어진 계약조건이 아니다. 코스모비즈 창간팀 스스로 자처했다. 경제적 유혹에 빠지게 되면 산업 연구소라는 순수성과 산업 전문 잡지라는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어서다. 창간 맴버로 참여한 기자 한 사람이 10만 불을 개인보증하고 준비한 사무실이다. 한국 주요 언론사에서 활동했던 전현직 기자들이 뷰티서플라이 산업을 위한 작은 연구소라도 유산으로 남겨드리자는 순수한 취지였다. 전 문화일보 기자가 초대 편집장의 책임을 맡았고, 전 MBC 기자, 전 KBS 기자, 전 SBS 기자가 필진으로 참여했다. 나머지 두 사람도 지역신문사에서 인정받던 출중한 여 기자들이다. 그중 한 사람은 KBS 대표직에 출마했다가 낙마한 뒤 도미한 유명 인사로 체계적인 연구소 기능을 완성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명망과 실력을 갖춘 인물이 갈 수 있는 자리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한인 이민 사회가 이룬 뷰티산업이라는 업적을 높이 사 기꺼이 코스모비즈를 선택했던 거다.

왜 협회지를 발행하라고 했던 것인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총연합회가 협회지를 원했고, 자기들이 부탁해서 수락한 일이다. 총연합회 이사회가 이사회의 절차를 밟고 결의한 사안이다. 코스모비즈 필진은 발행 책임을 맡은 담당 부회장의 제의를 수락한 죄 밖에 없다. 총회장이 정식 계약서에 서명해서 시작된 일이란 말이다. 없는 돈까지 끌어모아 사무실을 꾸미고, 다니던 회사에 이미 사표까지 제출하고 입사한 직원들이다. 아무리 임원 간 감정적인 대립이 있다고 해도 이것은 도를 넘은 치명적인 상황이다. 당장 법적조치를 취하고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은 분노도 순간순간 치밀어 올라왔다. 총연합회 이사회에 정식으로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발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그럴 수도 없다. 총회장단을 찾아가 통사정했다.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마음으로 애원했다. 코스모비즈 발행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이미 나를 믿고 모인 선배, 동료 기자들의 이력에 흠이 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협회지 발행을 수락했던 것이 죽고 싶을 만큼 후회스러웠다. 경제적 손실이 커지더라도 우선은 동참해 준 동료, 선배 기자들이 소리소문없이 탈출할 수 있도록 출구를 만들어 드리는 일이 급선무다.

메이저 언론사 출신 기자들이 왜?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 중이던 선배 기자들에게 제안했다. “뷰티산업은 한인 이민자들이 만들어 낸 기적 같은 존재다. 미국 한인 동포사회 경제의 약 18%가 뷰티산업에서 비롯된다. 한국경제 발전의 초석도 가발산업이 놓지 않았는가? 그런데 “가발”이 주는 선입겸이나 거부감 때문인지 누구도 뷰티산업의 존재를 인정해 주려 하지 않는다. 장사를 잘하시는 분들은 많지만,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할 연구소도 없다. 산업 규모는 대단한데 주먹구구식이라서 산업의 기본적인 표준과 규격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주요 언론사에서 이미 명예도 얻고 과분한 혜택도 누리며 살지 않았는가? 미국으로 생활 터전을 옮길 것이라면 인생 중 최소 몇 년만이라도 그분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게 어떻겠나?”

정치와 국제관계 등 굵직한 이슈만 취재하고 글을 쓰던 선배들이 망설임 없이 동의해 주었다.

2009년 7월 준비호

빨리, 하지만 조용히 떠나자

원래는 전문지 다운 기능을 갖추고, 산업 연구소로서 최소한의 기능까지 갖추려면 못 잡아도 3년은 걸릴 거라 예상했다. 연구기능과 잡지발행을 동시에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다. 뷰티산업 관련 데이터나 산업통계자료가 전무한 상황이라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업의 변동추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데이터가 꼭 있어야 하므로 뷰티서플라이에서 취급하는 모든 제품을 100여 개의 세분화된 카테고리로 나누고 판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입력해야 한다. 그렇게 3년 정도 데이터를 축적하고 나면 앞으로의 추이를 예측하기 쉬워진다. 어느 산업이든 이런 기본적인 통계자료가 없이는 미래를 준비하기가 어려워 잡지발행과 동시에 그런 기본적인 연구를 지속해 나가려는 계획이었다. 사회적 명망있는 사람들이 모여 연구소를 차리면 대학이 동참할 수 있게되고, 학생들이 모여들어 발품을 팔아 줄 것이라 기대했다.

모든 계획과 준비는 수포가 되고 말았고,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산업통계는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같다. 실업인 협회도 이런 통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존재의 가치도 높아지는 것이고 회원들뿐 아니라 도매/생산업체들이 더욱 정확하고 빠른 길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게 된다. 코스모비즈는 예상치 못한 저항을 받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누군가 미완의 이 숙제를 풀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LA에 소재한 M 헤어 회사에서 광고 문의가 들어왔다.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김YK 부사장님의 목소리는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귓속에 소중히 남아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도 이 보다 더 반가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코스모비즈는 소매점을 대표하는 총연합회 소속의 공식 잡지라서 아무리 큰 광고주라 해도 도매업체가 상식 밖의 거래행위를 할 경우 날카롭게 지적할 수밖에 없는 처리라는 사실도 미리 밝혔다. 놀랍게도 M사 김YK 부사장은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 뷰티 산업이 발전합니다.”라며 흔쾌히 광고를 주었다.

[다음. 2. 회유와 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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