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는 그렇게 태어났다. 평범한 상황에서라면 창간호는 축하 파티를 열만큼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코스모비즈 사무실은 침울했다. 일을 어떻게 했길래 상황이 이렇게 되었느냐는 원망은 다른 불평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법이다.

총연합회 부회장이라는 사람은 마치 편집실의 이런 혼란을 바랐던 것처럼 동료 중 한 사람을 따로 불러내 회유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을 데리고 나와라. 내가 밀어줄 테니 새로운 협회지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던 모양이다. 회유당한 직원이 대화도중 홧김에 밝힌 사실이라서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배움이 부족하고, 돈밖에 모르는 소인배라 해도 그렇지 이런 상상을 초월한 일을 등 뒤에서 꾸미고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때 서야 알았다. 총회장이 계약서에 서명까지 해 놓고 왜 코스모비즈를 그렇게 부정했었는지를. 협회지 책임을 맡은 책임자가 부회장 중 한 사람이라서 나는 부회장의 감독을 따를 수밖엔 없었다. 정상적인 조직의 위계질서는 직속 책임자를 통해서만 최고 책임자에게 지시와 보고가 전달되는 것이 상식이다. 협회지 발행 책임을 맡은 부회장을 페싱하고 총회장에게 직접 보고하거나 지시받을 경우 책임을 맡은 부회장의 위치가 곤란해지고 조직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할 기본적인 룰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회장의 품성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던 총회장의 입장에서는 그런 코스모비즈 편집실이 불안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경계하게 되었겠다는 짐작이다. 코스모비즈 편집실이 마치 해당 부회장과 한통속처럼 보였을 테니 말이다.

총회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 마음이 상하면 쉽게 바뀌지 않게 되고 귀가 닫혀버리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결국, 부회장의 회유가 먹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혼란한 상황을 야기한 책임 때문인지 편집실 직원 여럿이 한꺼번에 떠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명망 있는 선배 기자와 어느 대학 교수님은 큰 탈 없이 코스모비즈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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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편집팀을 구성하다

텅 빈 편집실에서 깊이 고민했다. 사무실 임대주를 찾아가 임대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지도 타진해 보았지만 거절당했다. 지금까지 드린 공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잡지를 시작하기 직전에 오픈한 가게는 엉망이 되었는데 돈 버는 일이나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오기 같은 것도 발동했다. 어차피 산업 연구소나 잡지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누구나 시작은 할 수 있겠지만 드리는 공에 비해 들어오는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중간에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주들 입맛에 맞는 기사만 쓰면 큰돈도 벌 수 있겠지만 소매점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잡지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왜 코스모비즈를 발행하겠다고 결정했는지 창간호에 적은 목적을 읽고 또 읽었다.

코스모비즈는 업체들의 지혜와 발전 전략이 절실한 이 시기에 창간돼 앞으로 NBSDA 회원업체들의 이익과 공동 번영을 위해 회원 업체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 할 것입니다.

NBSDA가 시장 활성화와 소비자 구매 촉진을 위해 창간 했다는 설립목적을 다시 한번 확인 하면서 코스모비즈는 이 같은 취지를 충실히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사무실을 떠난 동료들은 나 혼자서는 잡지를 만들 수 없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문제의 부회장은 직원들을 회유해서 편집실을 해체하면 결국 코스모비즈를 포기하고 될 것이고, 그때 그들을 불러 새로운 이름으로 잡지를 다시 만들면 된다는 계산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냥 가게나 열심히 할까? 이 무지한 인간에게 본때를 보여줄까? 다 잊고 원래의 취지만 생각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라도 계속 갈까? 총회장을 찾아가 이간의 사실을 밝히고 도움을 호소할까?”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생각이 바뀌는 복잡한 심경이다.

마음을 다잡고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사가 될 만한 내용을 몇 페이지만 써 달라고 부탁한 거다. 아내는 명문대 출신으로 한국에서는 마케팅 조사, 전략, 기획 업무를 하다가 대학원 MBA 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 와 만난 사람이라서 실력이 뛰어나다. 잡지발행을 반대했고 그때까지도 편집실은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흔쾌히 도와주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도 새로 뽑았다. 그렇게 세 사람이 두세 달 동안 100페이지 분량의 잡지를 만들었다. 교만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초반에 시작하여 거의 평생을 영문 주간지와 한글 월간지, 방송물 등을 만든 경험이 있어서 혼자서라도 100페이지 분량의 월간지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듬해인 2010년 2월에는 뉴욕에 살고 계시던 김광택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내가 계속 도와줄 수 없는 입장이라 도움을 청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셨다. 워싱턴으로 다시 이사를 오기까지 김광택 사장은 약 반년 동안 주말부부로 워싱턴과 뉴욕을 오가며 코스모비즈를 만들었다. LA에 소재한 작은 헤어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김경훈 기자도 불렀다. 아내와 갖난 아이를 데리고 워싱턴으로 이사와 함께 잡지를 만들었다. 서울에 사무실을 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함께 일하던 유능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뭐든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코스모비즈는 제2기 편집진을 꾸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륙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총회장도 당시 벌어졌던 이면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오해가 풀렸다. 진실은 세월이 지나면 밝혀지는 것이고 오해는 가만 두어도 때가되면 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은 오해로 뷰티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했던 산업 연구소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불필요한 오해는 괜한 손실만 야기할 뿐 아니라 오해가 길어지면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해가 사실처럼 전달되고, 그런 오해가 숙성하면 잘못된 진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런 오해를 바탕으로 선입견이 만들어지게 되면 지워지지 않는 잘못된 첫인상으로 남게되어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한 사람을 내몰 위험이 있다. 마녀사냥이란 것이 그렇게 벌어지는 거다. 따라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는 감정을 억제하고 가능한 많은 대화로 빠른 시간내 진실을 밝히려는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코스모비즈를 창간한 2009년부터 폐간하는 2020년까지 총연합회 이사회에 요청했다. 이사회 정식 회의를 개최하고 코스모비즈와 총연과의 관계를 진솔하게 밝히고 종결을 지어야 한다고. 그래야 사과할 쪽은 사과하고, 용서할 쪽은 용서할 수 있고 마녀사냥이 멈추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백서를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토의하길 거부하고 있다. 백서로라도 남겨 사실을 밝히게 된 주요 배경이다.

[다음: 3. 가발 전문가 교육을 시작하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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