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산업 통계를 수집하고 분석할 연구소의 꿈이 사라져 아쉽게 되었다. 이런 연구소는 소득이 없기 때문에 제조사/도매업체들이 돈을 모아 공동으로 만든다. 연구 실적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받게 되면 정부와 그랜트 기구가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쉽게도 한인 이민 사회는 아직 청년기에 접어들지 못해 제조/도매사들의 협조로 산업 연구소를 출범시킬 형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실력을 갖춘 사람들의 재능기부와 대학의 학자들 협조로라도 출범시켜 보려 했다. 그렇게라도 출범시키고 기초적인 통계자료라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시장분석 보고서를 분기별로 만들어 제공하다 보면 한인 기업들도 조금씩 후원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거다. 실력이 출중한 분의 재능기부를 얻어내고 어느 대학 교수님의 약속까지 어렵게 받아 준비한 연구소였는데 참 아쉽게 되었다.
코스모비즈의 목표를 수정하기로 했다. 연구소가 아니라면 교육기구로라도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가발 전문기술 양성과 뷰티서플라이 직원교육 교재 사업이다.
매월 코스모비즈 잡지를 만들면서 틈틈이 가발 교육에 대한 상황을 먼저 파악했다. 가발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백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과 남성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한국에만 남아있었다. 교육내용을 검토해 보니 주로 맞춤 가발에 대한 교육이다.
미국 흑인 소비자를 주로 겨냥한 한인 뷰티산업은 소비자가 가게에서 당장 쓰고 나갈 수 있는 Ready-to-wear 상태의 가발이 주류다. 의류와 비교하면 재래시장에서 싸게 팔리던 기성품 의류와 유사한 위치다.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그런 완제품 가발은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고, 패션 가발 시장 전체를 위기로 내몰 것처럼 보였다. “2010년 당시와 그 이전이 어떻게 변했길래 위기로 내몰릴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가발회사는 뱅이라 부르는 앞머리 부분의 헤어를 필요 길이보다 약간 길게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야 소비자가 자기 얼굴에 맞춰 머리 길이를 컷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션가발의 그런 특성이 2010년쯤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소매점 경영인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가발의 구조적 변화를 시도하는 도매업체들이 무책임하게 보였다. 이런 사실을 코스모비즈에 기사로 꾸준히 게재하면서 가발회사 대표님들을 찾아가 말씀드렸다. 코스모비즈의 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발생적인 현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업계의 방향이 바로잡혀 다행스럽다. 효과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런 최소한의 노력이 산업 전문잡지의 책임이고 존재 이유라 생각했다.
글이 장황해질 수 있지만, 이해를 도우려고 다시 의류제품과 비교하여 가발을 생각해 보자. 의류는 맞춤복, 준 맞춤복, 완제품이 있다. 가발도 같다. 맞춤복은 가격 부담 때문에 도태되고 말았다. 가발도 비슷하다. 완제품은 재래시장이나 월마트 같은 디스카운트 매장에서 판매되면서 이윤이 박해졌다. 바지의 길이와 허리만 고치면 맞춤복 같은 느낌을 받는 중간급 의류가 대우받듯 가발 역시 약간의 손질이 필요한 제품이 성행해야 뷰티 스토어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소비자는 뷰티 스토어에서 가발을 써보고 인터넷에서 싸게 구매하는 불공정한 거래문화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소매가 대세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소매점은 매장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보였다. 위빙 제품이나 케미컬 제품은 미용실이나 집에서 주로 사용하니까 뷰티 스토어는 소매만 할 수 있고, 소매만 가능한 제품은 온라인 소매로 이동해 갈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가발은 소비자가 뷰티 스토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를 소매점에 묶어 두기 위해서는 가발 서비스 폭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뷰티서플라이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
맞춤 가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아데랑스사 강사도 만나보고, 한국에 나가 대한가발협회도 만나 그들의 교육 콘텐츠를 검토해 보았다. 다행히 대한가발협회 강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뷰티서플라이 환경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다. 대한가발협회가 갖고 있는 맞춤 가발 기술의 절반과 미용사들이 갖고 있는 컷팅 기술을 절반씩 혼합해 새로운 형태의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무료교육은 필요 없지만, 모든 유료 직능교육은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게 되어있다. 절차와 조건도 까다롭지만, 교육 사기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법이므로 꼭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코스모비즈는 대한가발협회와 공동으로 국제 인증기구 IHT(국제두피가발전문가연합)을 설립하고 교육기관으로 등록을 마쳤다.
몇 차례의 검증 과정과 예행연습을 통해 만족할 만큼 프로그램이 개발되었고, 대한가발협회와 공동으로 워싱턴에서 제1차 교육을 실시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미 전국 7개 지역에서 실시한 가발 교육은 만족스러운 결과로 나타났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후속 교육이 뒤이어 제공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교육은 가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기본기술을 가르쳐 어떤 기술을 습득해야 할지를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다. 몇 개월의 공백을 두고 실시해야 하는 두 번째 교육은 습득한 기술로 어떻게 가발을 응용하고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지를 가르칠 목적이었다.
제1기 워싱턴 DC
- 2010년 8월 8일 (3박4일)
- Coral Costa Caribe 리조트
- 가발 및 뷰티서플라이 전문 교육 및 도미니카 미용업계 산업시찰 그리고 아름다운 여행
제2기 버지니아 센터빌
- 2010년 11월 7일 (3박4일)
제3기 텍사스주 달라스
- 2010년 11월 14일 (3박4일)
가발회사 최고경영인들의 만남
3개 도시 순회 교육을 마치고 교육 결과를 들고 모발수업업자협의회로 구성된 가발회사 최고경영인들을 만났다. 이들 회사가 만든 제품을 우리 소매점이 판매하기 때문에 당연히 교육은 제조사가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가발회사 대표들도 동의해 주었다. 각각의 회사가 미 전국의 모든 뷰티 스토어를 교육하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코스모비즈가 전체 가발회사를 대신해 교육을 시행할 테니 모든 가발회사가 교육비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객관성과 전문성을 확인한 가발회사 대표는 가발 교육사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첫 사례로 제7차 가발 교육은 2011년 7월, 도미니카공화국의 리조트에서 4박 5일의 일정으로 진행했다. 가발회사, 코스모비즈, 참가자가 각각 33%의 경비를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참가자뿐 아니라 후원한 가발회사들 모두 만족해했다. 다음 교육은 코스타리카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준비에 들어갔다.
제4기 도미니카공화국
- 2011년 1월 10일 (4박5일)
- Coral Costa Caribe 리조트
- 가발 및 뷰티서플라이 전문 교육 및 도미니카 미용업계 산업시찰 그리고 아름다운 여행
제5기 조지아주 애틀란타
- 2011년 5월 22일 (1박2일)
제6기 일리노이주 시카고
제7기 인디에나주 인디에나폴리스
교육프로그램을 빼앗기다
가발 교육프로그램이 성공한 기쁨도 잠시, 총연합회 어느 이사가 지나가는 말처럼 불만을 표했다. “가발 교육처럼 중요한 프로그램을 왜 코스모비즈가 운영하는 겁니까? 그건 총연합회가 운영해야 맞습니다.” 제발 그러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총연합회에서 진행하실 수 있다면 부디 그렇게 해 주시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래요? 그럼, 어디 내놓아 보세요.”
같은 날, 총연합회 여성회장도 비슷한 내용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도미니카 교육 받으신 분들 보니까 주로 우리 여성회 회원들이던데, 여성회가 할 일을 왜 코스모비즈가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 여성회가 뉴저지 H사에 부탁해서 가발 교육을 진행할 테니 그리 아시라. 그리고 다음 코스타리카 교육은 우리 여성회 멤버 중에 가발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한테 교육받으면 되니까 코스모비즈는 빠지셔도 된다”고 통보하듯 말했다.
여성회 회장단이 한국의 대한가발협회까지 쫓아가 코스모비즈 대신 여성회와 함께 가발 교육을 하자고 제안했다는 말을 들었다. 코스모비즈는 앞으로도 뷰티산업을 위해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던 입장이라 저항 없이 가발 교육을 넘겨주었다.
교육을 받은 소매점 경영인들이나, 후원하는 가발회사 모두 만족하는 교육을 개발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 생각을 실천하고 성공사례를 만들어 신뢰까지 쌓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교육은 미주 한인 가발 역사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 낸 가발 전문가 교육이었다. 다시 시작하라 해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과정을 겪고 만들어 낸 작은 성공이다. 그런 교육프로그램을 키워주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협회라는 힘을 이용해 빼앗아 가는 것은 무지함을 뛰어넘어 비극적인 일이다. 이분들에게는 항의도 하지 않고 그냥 넘겨드렸다. 대화와 설득이란 것도 최소한의 기본 양식을 갖춘 사람들이라야 가능한 일이라서 그랬다. 완전 공백 상태인 분들에게는 어떤 설명도 통하지 않는다. 고집과 파괴를 실력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 통하겠나?
NBSDA 여성회는 가발 교육프로그램을 빼앗듯 가져간 뒤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가발 교육은 폐지되고 말았다. 그럴 거면서 왜 빼앗아 간 것일까? 이 백서를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런 허무하고 참담한 과거 역사를 거울삼아 앞으로 누군가 미주 뷰티산업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노력할 때 단체라는 힘을 악용해 파괴를 일삼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빼앗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이 코스모비즈가 만든 가발 전문가 교육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