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하다 보면 소매협회장들이 공통된 불만이 있다. 도매업체 대표들이 만나주지도 않고 설령 만난다 해도 “저희 물건을 얼마나 사 주실 건데요?” 만 묻는다는 불만이다. 도매업체 경영인들도 공통된 불만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도매업체 대표는 핸드폰 번호 주기도 꺼린다. 번호를 주고 나면 자식들뿐 아니라 처조카 결혼식까지 화환을 보내라는 메시지만 들어오기 때문이다.

코스모비즈를 시작한 후 뷰티산업을 관찰하고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점 하나를 꼽으라면 대화가 금기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떤 단체나 사람을 만나도 사업 이야기는 듣기가 어렵다. 사업상 만나는 자리에서조차 사업 이야기만 빼고 대화한다. 그러면서 양측이 서로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대화의 물꼬를 트다

코스모비즈는 2010년 0월호에 헤어 제품의 리턴 문제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소매점에서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재고품을 도매업체가 벌칙금 없이 리턴해 주는 것이 도매업체를 위해서도 득이 된다는 내용의 기사다. 이 기사에 대한 정중한 편지 한 장이 배달되었다. 기사의 내용이 도매업체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으로 소매점을 잘못 유도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 섞인 편지였다. 공문 아닌 공문이었기에 정중히 답했다. 답신을 받은 헤어제품수입업자협의회(AHIA 지금은 해체되었음) 측에서 만나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공식 포럼 형식으로 만나기로 했다.

처음에는 날 선 공방이 오갔지만, 소매점들의 입장을 대신해 참석한 코스모비즈의 논리를 경청해 주신 도매업체 대표님들은 상당 부분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도소매 양측 모두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타개해 나갈 방법도 논의되었다.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된 포럼의 끝부분에 양측은 이런 생산적인 포럼이라면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자는데 합의하고 모임의 범위도 소매업 단체장들로 서서히 넓혀가기로 했다.

다음 포럼 때는 소매점 대표로 인디에나 협회 이SY, 우HS 회장도 동석했다. 이날 포럼은 앞으로 벌어지게 될 번들 헤어에 대한 문제를 포함 미리 정해놓은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생산적인 대화에 도매업체 대표님들도 만족해했고, 이런 생산적인 대화라면 대화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는 자리가 되었다.

다음번 포럼은 총연합회장단 일동이 참석하여 한 발 더 진전된 내용의 대화를 시도해 보자고 건의했고, 도매업체 측에서도 기꺼이 수락해 주었다. 단, 건전하고 생산적인 대화의 장이 되기 위해 코스모비즈가 사회를 맡아달라는 단순한 조건뿐이다.

2012년 2월 12일, 코스모비즈는 토론에 앞서 토론 의제를 미리 정하고 NBSDA 총회장단과 사전 토의를 마친 뒤 포럼에 참석했다. 그 덕에 이날 포럼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타나게 되었고, 양측은 일곱 가지 사안에 공감대를 만들어 냈다. 당시, 도매업체는 인모 헤어 제품을 과하게 공급하고 있었고 “박스 띄기”가 판을 치고 있었다. 박스로 주문하면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소형 가게들의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었다. 따라서 박스가격과 피스 가격의 편차를 없애자는데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도매업체 측의 요구사항도 있었다. 텀 기간을 줄여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70년대 만들어진 텀 문화가 그때까지 계속되어 6개월에서 1년씩 외상값이 밀리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총연합회 측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텀 기간을 좁히되 단계적으로 좁혀 소매업자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조건에서 합의가 도출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7가지 사안이 합의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양측은 합의한 사항을 각 측 이사회 혹은 회원사에 알리고 동의를 얻어 최종합의문을 도출해 내기로 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2년 2월 26일, NBSDA 총연합회 (당시 총회장: 주부호)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우해수 소매업 경쟁력 강화 위원장이 2주 전 모발수입업자 협의회와 갖은 포럼 결과를 보고하였고, 합의안 일곱 가지를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합의된 내용에 대한 토론은 없었고, S헤어사 타도가 이사회 주요 안건으로 논이 되고 만 것이다. 2주 전 포럼에 참석해 합의안을 박수친 총회장단이 정작 합의된 내용에 대한 결의 여부를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도매업체 때려잡지” 식 자극적인 주제로 회의를 진행해 버린 것이다.

오래전의 이야기도 아니다. 불과 14일 전에 도매업체 대표들과 합의한 내용과 정반대되는 주제의 이사회가 열리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왜 도매업체 대표들이 소매단체와 대화를 꺼리는지 처절하게 느끼는 계기였다. 굳이 지성인이 아니더라도 이런 무지막지한 경우는 이전이나 이후에도 본 적이 없어서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코스모비즈는 도매업체 대표님들뿐 아니라 각 회사의 전무, 부사장급 실무자들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회사 대표님을 설득하여 실무 책임자 한 사람씩 포럼에 나와 소매업자들과 건설적인 대화의 장을 열자고 건의했다. 건전한 대화가 될 수 있도록 코스모비즈가 사회를 맡아달라는 조건으로 대규모 포럼이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포럼이 열리기 약 2주 전 총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사회는 다른 사람이 볼 예정이니까. 코스모비즈는 안 오셔도 됩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포럼은 “성토의 장”이 되었고, 그날 이후 도소매 간의 대화는 다시 멈추서고 말았다.

[백서] 5. 총연합회에서 쫒겨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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