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잘 되는 가게와 안 되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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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믹 기간 뷰티서플라이는 전반적으로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 카테고리 전반에서 고르게 매출이 늘어 팬더믹 호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 와중에도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가게도 많다. 무엇이 다르기에 그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버지니아 리치몬드의 여러 가게를 돌아보았다.

리치몬드 다운타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두 개의 가게가 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뒤 상가를 지나 주택가로 들어가는 주요 선상에 위치한 두 개의 가게는 1마일 정도 가깝게 있다. 금요일 퇴근 시간에 방문한 두 가게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를 보이었다. 손님 숫자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라 가게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크게 달라 보였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먼저 나온 가게는 약 1만 sq. ft. 정도의 크기다. 간판부터 크고 웅장해서 쉽게 눈에 띄었다. 오픈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지 실내는 현대적이고 정갈하다. 선반은 주로 빨간색 테두리로 장식되어 젊고 신나는 분위기다. 케쉬대는 문에서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자리 잡고 있고, 사각의 섬처럼 자리 잡고 있다. 흑인 직원들 두세 명이 케쉬대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케쉬대를 지나 양옆과 뒤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섹션별로 나뉜 제품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의류 섹션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야한 속옷을 포장지에서 뜯어 옷걸이에 걸어두었고 그 주위에 최근 유행하는 의류 세트가 마네킹에 입혀져 있다. 케미컬 제품은 유리 선반에 놓여 있다. 깊이가 쇠로 만들어진 기존의 곤돌라보다 좁다 보니 같은 공간에서도 훨씬 더 많은 제품을 전시할 수 있고, 단정해 보인다.

가게 뒤쪽은 섹션별로 직원들이 분산되어 이곳저곳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다. 눈에 띄는 직원들만도 6명. 이 가게의 사장은 모자 섹션에서 핸드폰을 들고 색상별로 모자를 주문하고 있었다. “빨간색 4개, 노란색 3개, 파란색 12개…” 가게의 규모나 손님들이 북적이는 정도에는 어울리지 않게 소량의 제품을 꼼꼼하게 주문하는 모습이다.

신제품이 곳곳에 진열되어 있다. 잘 팔리든 안 팔리든 신제품을 가장 눈에 잘 띄는 눈높이에 진열해 놓은 것도 눈에 띈다. 손님들에게 이 가게는 최신 상품을 주로 취급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기자가 가게 주인과 잠깐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가게에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주로 젊은 여성들로 전문직 여성들이 많아 보였다.

다소 한가한 가게

그곳에서 1마일 정도 더 외곽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도 비슷한 규모의 가게가 있었다. 위치적으로는 앞 가게보다 더 쉽게 눈에 띄었는데 가게의 외관은 오래된 뷰티서플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주차장에는 단 한 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다. 얼핏 보아도 20년 이상 장사를 하던 가게라는 느낌이 와 닿을 정도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주인의 성격 때문이겠지만 제품은 매우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케쉬대는 앞쪽 창문 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안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케쉬대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남자 사장은 뒤쪽에서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오래된 가게답게 선반도 베이지색 곤돌라다. 케미컬 제품이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왠지 최근에 유행하는 제품은 눈에 띄지 않고 오래된 제품만 시선을 끌었다.

이 가게에도 의류 제품이 한쪽 구석에 전시되어 있긴 하지만 야한 속옷이나 요염한 의류보다는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제품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커다란 규모의 가게에 손님은 두세 사람 정도 쇼핑을 하고 있었고 가발 섹션은 많은 종류의 가발이 전시되어 있지만, 가발 전문점이라는 느낌보다는 가발 도매상 같은 느낌이 든다.

사장에게는 불쾌하게 들릴 수 있었겠지만, “가게가 오래된 것 같네요. 2000년대 초반의 모습 그대로예요”라고 말을 걸어 보았다. 사장은, “이곳은 주택지가 모여있는 동네 장사라서 오래된 단골들이 주로 찾아오는 가게라서 이런 모습을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나이 든 고객들이 젊은 사람들의 유행을 쫓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분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기자의 생각을 직접 표현할 수 없어서 가게 사장에게 양해를 구한 뒤 쇼핑을 마치고 떠나려는 손님에게 설문조사라는 핑계를 대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딸과 함께 쇼핑을 온 40대 직장여성으로 보였다.

[기자] 요즘 사용하고 계신 헤어관리 제품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손님] 저는 네츄럴 헤어라서 뷰티 제품을 쓰지 않아요.
[기자] 네츄럴 헤어를 관리하는 제품이라도 쓸 거 아닌가요?
[손님] 물론이죠. 네츄럴 헤어용으로 만들어진 Mielle 를 온라인에서 주문해 써요.

뷰티서플라이에서는 브레이드 헤어만 사서 쓰고 있고.사장에게 물었다. 이 가게에서도 Mielle를 팔고 있는지. 사장님은 도매상 카탈로그에서 보긴 했지만, 아직 팔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즉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Mielle는 오래전부터 인터넷과 타깃 등에서 불티나게 팔리다가 인기가 식기 시작하면서 한인 도매업체도 판매를 시작한 지 쾌 되는 브랜드이다. 그런 제품을 뷰티서플라이에서는 살 수 없는 희소성이 높은 제품이라고 착각하는 손님도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Mielle가 어떤 제품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 사장님이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새로운 길을 찾는 가게이 두 가게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다른 가게를 갔다. 백인 주민이 다수이고 흑인 주민이 소수인 지역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약 5,000 sq. ft. 규모의 아주 특이한 뷰티서플라이를 발견했다. 케쉬대 뒤편에는 수십 가지의 향료가 큰 병에 담아 전시되어 있고 손님이 원하는 향을 원하는 크기의 병에 담아 판매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 가게는 자체 브랜드로 만든 수십 종류의 로션도 팔고 있다. 곳곳에는 나무 재질로 만든 장식장이 놓여있다. 대충대충 만든 것이 아니라 모두 전문 목수가 제작한 것처럼 잘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 나무 장식장의 가장 잘 보이는 공간에 제품 대신 가게의 로고를 곳곳에 새겨 놓았다.가발 섹션은 전문 가발 샵처럼 잘 꾸며져 있다. 오래된 가게라서 새 가게들처럼 번쩍이는 것은 없지만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렇게 잘 꾸며진 가발 섹션에 가발 전문직원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겸손하면서도 샤프한 느낌의 여성 매니저도 바로 그 점을 아쉬워했다. 그런 직원을 간절히 찾기는 하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상상이나 말은 쉽지만 실제로 이런 고급스럽고 독창적인 가게를 실제로 시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이 가게처럼 안정적인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설령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금전적 보상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가게 사장이 멋져 보였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사업의 일차 목적이겠지만 돈과 소비자의 존경심까지 함께 버는 것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멋지다는 거다.햄버거를 굽는 가게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다가 맥도널드라는 햄버거 가게가 새로운 컨셉을 만들어내고 세상을 바꾸었다. 컨셉이 현실로 나타날 때 벌어지는 기적이 분명 언젠가는 뷰티서플라이 업계에도 다가올 확률이 높다. 역대 거의 모든 산업도 그런 과정을 지나왔으니 말이다.

축복받은 산업이다

10년, 20년씩 운영하던 가게를 리모델링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타고난 성격까지 바꾸어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사에 뛰어든 사람은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거나 앞서갈 책임이 주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리치몬드의 어느 한 가게는 나이 든 주인 혼자서 커다란 가게를 운영하기도 한다. 80년대의 뷰티서플라이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널찍한 테이블에 제품을 올려놓고 판매하고 있다. 케미컬 섹션도 매우 작고, 헤어 섹션도 턱없이 작다. 거의 모든 게 오래된 재고품들처럼 보인다.

그런 가게의 사장님은 그게 좋다고 말했다. “돈을 벌면 얼마를 벌겠다고 발버둥을 칩니까? 장사해서 자식들 잘 키워 지금은 아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된 것이지요. 가게에서 들어오는 매상은 렌트비 내고 남는 것이 다 내 것이니 팔리면 행복하고 안 팔리면 그만이고요.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놀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요. 이렇게 매일 가게에 나와 일할 수 있는 게 행복이고, 당신 같은 기자를 만나 이렇게 재미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으니 장사처럼 고마운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뷰티서플라이 산업은 가장 축복받은 산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들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에게 보람까지 주는 고마운 산업이다. 백 년에 한 번씩 온다는 팬더믹 상황에서도 호황을 즐기는 고마운 산업이다.

[Photo credit: World Orgs, 위 사진은 본 기사의 내용과 상관이 없으며, 리치몬드 지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뷰티서플라이라는 점에서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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