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질문,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앞서 게재한 기사<한 동네 두 개의 트레이드 쇼?>는 사안의 배경이나 각 단체의 입장을 빼고, 문제의 핵심만을 다루었다. 사안의 배경이나 각자의 입장이 더해지면 사안의 본질이 희석되거나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래의 기사는 어떤 배경에서 조지아 신 협회가 기존 협회의 봄 트레이드 쇼를 겹쳐 주최하겠다고 발표했는지의 배경을 다루었다. 이 사안은 봄과 가을이라는 시간적 공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계절에 <>를 표기했다.
쇼 장소가 문제다
조지아협회는 지난 십수 년째 매년<봄>에 트레이드 쇼를 운영해 왔다. 조지아 신 협회는 지난 5년간 <가을> 쇼를 주최하고 있다. 이런 평화와 공존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한 것은 하나였던 봄 트레이드 쇼가 둘로 늘어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트레이드 쇼를 1주일 간격으로 개최하게 되면 참가하는 도매업체와 생산업체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궁지에 놓이게 된다. 바잉파워가 큰 회원들이 모여있는 협회 손을 들어줘야 할지, 아니면 바잉파워는 작지만, 참석회원 수와 지역 범위가 넓은 협회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결국 양쪽 쇼 모두 참석할 수 없게 되는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말이다. 특히 봄철 트레이드 쇼는 도매-생산업체들이 신상품을 주로 런칭하기 때문에 트레이드 쇼에서의 성패가 1년 사업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하다. 그런 도매-생산업체가 입장이 곤란해 어느 쇼에도 참석할 수 없게 된다면 피해는 상상보다 커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똘똘 뭉쳐도 시원치 않은 판에 소매업자들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쪼개지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커진다.
강력한 도전에 대한 방어다
조지아 신 협회 박미미 회장은 <가을> 쇼와 더불어 <봄> 쇼까지 열기로 한 이유를 경쟁 관계인 조지아협회가 행사 장소를 침범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협회가 <가을> 쇼를 개최하고 있는 장소는 게스 사우스 디스트릭(Gas South District) 컨벤션센터다. 조지아협회는 캅 갤러리 등 다른 행사장에서 <봄> 쇼를 개최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3월 조지아협회가 Gas South로 장소를 옮겨와 암묵적 계약(불문율)이 파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 협회 박미미 회장은 공식 의견문을 통해, “(이것을) 저희 협회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임원회의를 통하여 우리의 쑈장을 지킬 목적으로” <가을> 쇼뿐 아니라 <봄> 쇼까지 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컨벤션 센터라는 장소가 시장 질서를 파괴할 만큼 큰 문제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Gas South 컨벤션 센터는 1990년대 초반에 애틀랜타 외곽에 설립되었다가 인근지역이 개발되면서 수요가 늘어나 지난 2020년에 1억 3,700만 불을 투자해 대규모로 고급스럽게 리모델링을 마친 장소다. 컨벤션 센터가 고급스러워지면서 행사 주최자 선정이나 음식에 대한 규정도 까탈스럽게 변했다. 그렇게 기준치가 높아진 Gas South 장소를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특히 한인 참석자들은 한국 음식을 원하는데 한식 반입을 허락받는 일이 특히 어려웠다고 강조했다. 장소 대여가 어려웠던 만큼 획득한 장소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장소를 사용하는 시기가 <봄>과 <가을>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것을 이해충돌로 볼 수 있느냐의 시각차이다. 신 협회의 입장에서는 “암묵적인 계약을 파기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조지아협회 측 입장에서는 <봄>이라는 시즌을 빼앗으려고 말도 되지 않는 장소를 탓하는 것이라는 거다.
Gas South 컨벤션센터의 입장은 무엇일까? 어느 컨벤션 센터나 1년 365일 풀 가동이 목표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대여해 줄 수도 없다. 예약할 때 주로 50%의 대여비를 받고 행사 직전에 나머지 50%의 대여비를 받는데, 행사 날짜가 임박해 행사를 취소할 경우 잔금 50% 모두를 손해 봐야 하므로 믿을 만한 사람이나 단체를 엄선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컨벤션 센터 역시 대여자의 권리를 보호해 줄 책임이 있다. 누가 애써 행사를 홍보해 놓았는데 비슷한 업종의 다른 사람이 이런 홍보 노력을 이용해 비슷한 날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행사를 주최한다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Gas South는 조지아 신 협회에도 오는 10월1일 행사 전후 60일씩, 총 4개월간의 독점 기간을 보장해 주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두 행사는 60일보다 훨씬 더 먼 <봄>과 <가을>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이해충돌은 없다고 답했다.
장소를 지적하는 박미미 회장의 주장에 대해 조지아협회 이강하 회장은 “합리적이지 못한 억측”이라고 잘라 말했다. “컨벤션 센터는 호텔처럼 여러 사람이 빌려 쓰는 곳이고, 그쪽은 <가을>, 우리는 <봄>에 쇼를 개최하는 데 어떤 이해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인가?”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조지아협회 다른 임원도, “도매업체가 <봄> 트레이드 쇼를 더 중요시하니까 어떤 트집이라도 잡아 <봄> 쇼를 빼앗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어를 위한 공격
박미미 회장은 지난 3월에 경쟁협회인 조지아협회가 자신이 사용해 온 장소를 사용했기 때문에 방어 차원에서 내년 3월3일 미리 장소를 선점해 놓았다고 밝혔다. “기존협회가 기존 장소에서 종전과 같이 쑈를 진행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장소가 서로 달랐던 4년 전에도 비슷한 헤프닝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많은 도매업체가 고통을 받아 항의했던 사실이 있어서 신 협회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미미 회장 역시 의견문에서 그런 속마음을 내비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협회는 그동안 많은 벤더들이 신상품 소개와 택스리턴 시기로 인한 오더의 극대화가 기대되는 봄 시즌에 개최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미 조지아협회가 매년<봄>에 쇼를 개최해 왔고 어느 도매업체든 참석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구지 신 협회에 <봄> 쇼를 개최해 달라고 요구한 도매업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새우싸움에 등 터지는 고래
어느 사회조직이든 명문화된 법도 있지만, 불문율 혹은 명분이란 것도 사회질서를 지키는 도구다. 많은 경우 불문율이 명문화된 법보다 더 강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약육강식만이 법인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이 사회라는 공동공간에서 평화롭게 상생하고 번영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조지아에서 개최되는 <가을> 트레이드 쇼는 조지아 신 협회에 주도권이 있다는 것이 불문율로 인정되듯, 조지아에서 개최되는 <봄> 트레이드 쇼는 조지아협회에 주도권이 있다는 사실 역시 불문율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주어진 권리를 악용해서도 않된다. 불문율 가운데에는 “사회구성원 다수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때는 다수 원칙에 따라 주도권자의 권리를 박탈할 수도 있다”는 불문율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지아협회가 주도권을 박탈당할 만큼 잘못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우리산업을 지탱해 주는 불문율을 우리 스스로 깨트리는 것은 평화와 번영을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지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남의 일”로 볼 수도 없다. 도미노 현상으로 전국 각각의 소매점에 끼칠 영향과 부담이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협회의 이익이나 감정보다 소매점이 원하는 평화와 번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협회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참가하는 도매업체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소매점 바이어는 쇼장에 빈손으로 왔다가 후한 대접받고 주는 선물과 경품까지 받고 돌아가면 되지만, 쇼에 참석하는 도매업체는 다르다. 도매-생산업체에게 트레이드 쇼는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비싼 부스비를 내고, 몇 달 전부터 부스 장식을 제작해야 한다. 그것을 대형 트럭에 싣고 장거리를 달려와야 하고, 직원들은 행사 전날부터 막노동 수준으로 부스를 꾸민다. 행사 당일에는 소매점 바이어들 앞에서 피곤한 내색도 못 하고 온종일 웃는 얼굴로 응대해야 한다. 쇼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다시 부스를 해체해서 트럭에 싣는 막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게 도매업체와 생산업체들의 숨겨진 고통이다. 그나마 그게 전부라면 좋겠지만 회사에 돌아가자마자 받은 주문을 처리해야 해서 쉴 틈도 없다. 그 노릇을 1주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하라는 것은 도를 넘은 요구다.
“선택은 도매상 몫”이라는 말도 뱉기는 쉽지만 소화해 내기 어려운 것이 도매업체들 입장이다. 큰 가게든 작은 가게든 도매업체에는 둘 다 소중한 거래처다. 그들에게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와 같은 가혹한 선택이 될 수 있다. 3월까지는 아직도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남아있다. 이제 공은 도매업체-생산업체로 넘어갔다. 도매업체는 소매점의 여론에 따라 결정하게 될 것이므로 소매점 경영인들의 의견에 따라 정해질 것 같다. <코스모비즈 장현석 기자>
[다음 편 예고: 총연합회도 이 싸움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조지아 신 협회와 공동으로 <봄> 쇼를 개최하겠다는 거다. 만일 총연합회를 업계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본다면 작은아들과 손잡고 큰아들을 치는 형상이다.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총연합회 역시 이유가 있을 거다. 다음 편에서는 총연합회를 중심으로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