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불, 6조3,000억 산업의 품격

미주뷰티서플라이를 대표하는 총연합회의 역할과 기능, 현실적 문제와 도전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쪽에서는 기존의 총연합회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서라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새판을 짜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판을 짜야 한다는 쪽에서는 이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지역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NFBS 총연합회 측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아쉽게도 몇몇 부회장이 사퇴한 것으로 전해지고 탈퇴를 고민하는 지역협회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총연합회 부회장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뷰티협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총연은 신 협회를 택했는가?” “왜 쇼에 목매다는가?” “총연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보는 사람마다 다르고,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누구도 “이것이다”라는 답을 내긴 어럽다. 중요한 것은 이런 원론적이지만 중요한 질문이 왜 이렇게 늦게 나왔는지다. 좀 더 일찍, 더 많은 사람들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더라면 지금의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뷰티협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은 크게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각각의 상황과 감정에 따른 주관적인 본질이다. 즉, 우리 스스로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우리 마음대로 만드는 거다. 둘째는, 미국 정부가 정해놓은 실업인 단체법 혹은 실업인 단체 공식 가이드라인과 같은 객관적이고 제도적인 범위에서 만들어지는 협회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협회를 만드는 의도는 비슷하지만, 과정과 틀이 달라서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차이가 있다. 취재과정에서 누구도 이에대한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고, 필자 역시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법제도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협회 법과 미국의 협회 법이 다르고, 한국적 단체문화와 미국적 단체문화가 다른 데서 나타나는 개념의 차이라 짐작하는 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보니 굳이 한국의 사단법인 제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뷰티서플라이 관련된 협회가 혹시 한국의 실업인 단체법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그로 인한 부작용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자칫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국적 사고와 법으로 판단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미국의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연방 공정거래위원회 (Federal Trade Commission)이 규정한 실업인 단체의 정의를 먼저 알아보자. FTC가 규정한 실업인 단체는, “실업인 간 경쟁을 북돋거나 상호 중립적 관계를 지키기 위함이다. 특히, 실업인 협회는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제조업체와 협력하여 산업 표준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협회는 해당 업종의 회원을 대표하여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의 입법부나 행정 기관의 입법/행정절차에 업종의 특성에 맞게 조언, 건의, 제안 등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담합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여야 하며, 독점법을(Anti-trust law) 위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이것이 어겨서는 안 되는 법이다.
지금까지 우리 업계의 협회는 이런 정부 가이드라인과 법을 잘 지켰을까? 소매업체 간 상호 중립적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도매업체와 논의하여 적정한 지역 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준치를 정했을까? 정부 각 기관에 협회의 존재를 알리고, 매년 활동 사항을 정리하여 각 기관에 제출하고 정부의 정책을 회원들에게 전달해 주었을까? 미용사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해 온 가발 서비스 업무가 가발 전문점이라면 마땅히 받았어야 할 특권인데 받았을까? FTC가 요구하는 바와 같이 독점법이 위반되고 있는지 이사회나 총회의 토론내용을 항상 감수할 수 있는 전문 위원이 회의에 늘 참석했을까? 안타깝지만 답은 모두 “아니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위의 가이드라인과는 정반대로 활동했거나 반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정관을 갖고 활동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FTC의 주 업무는 가격담합이나 공동불매행위를 적발하는 일이다. 800여 명의 검사가 거의 매일 미 전국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모든 산업의 실업인 단체를 지켜보고 있다. 협회가 의도적으로 가격을 밀약하지 않았다고 해도 예상치 않은 곳에서 담합행위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FTC 규정에는, “현재 판매하는 가격 또는 개별 경쟁업체가 특정 제품을 얼마에 파는지, 어느 수량이나 파는지 등을 이용하여 가격을 비슷하게 맞히는 행위도 가격담합행위로 간주한다.”고 적혀있다. 제품 카테고리에 따라 어느 종류의 제품은 50%, 어느 종류의 제품은 30% 등의 이윤을 정해놓고 부친다면, 협회원들이 제품을 공동으로 구매할 경우 구매 가격이 같다 보니 판매가격이 똑같아질 수 있기 때문에 가격담합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구매조합의 법적 기능과 협회의 법적 제한을 우리 마음대로 섞거나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거다. 다시 말해, 협회가 할 수 있는 일과, 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을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는 거다.
또한, 표준규격 위원회는 협회 존재의 근본 목적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만들어져야 한다.
왜 총연은 신 협회를 택했는가?
총연합회가 왜 기존의 조지아협회가 아닌 조지아 신 협회를 선택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으로 들린다. NFBS 총회장단은 며칠 전 애틀랜타에서 지역 한인 언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한 임원은, “신 협회는 총연 소속이고, 구 협회는 총연 소속이 아니라서 다르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내용 중 가장 가슴 아프게 들린 부분이다. 어느 기자가 그 임원에게 다시 물었다. “총연합회 회원은 지금 몇 명이나 되냐”라고. 그 질문에 해당 임원은, “미 전국에 약 6,000에서 7,000개의 소매점이 있다”고 답했다. 해당 기자가 왜 이 질문을 했는지 총회장은 눈치채지 못한 표정이었다.
6,000에서 7,000개의 소매점이 총연의 회원이라는 말과, 총연합회 연회비를 낸 지역협회만 총연 소속이라는 말은 서로 엇갈리는 거다. 어떻게 모든 지역협회를 포함한다는 의미의 “총”연합회라는 타이틀을 쓰면서 특정 협회 편에 서서 다른 협회를 적 대하듯 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을 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란 짐작이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에서는 협회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정부 기관의 일부 만큼이나 무겁다. 정부 각 부처마다 모든 업종의 전문인력을 공무원으로 둘 수 없기 때문에 정부 기능의 일부를 각각의 실업인 협회에 맞겨 자체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있다. 예를 들어, 소아과의사 협회가 정부를 대신해 소아과 의사들에게 자격증을 주는 것이다. 그런 이유때문에 협회가 지방정부뿐 아니라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거다.
따라서 협회나 총연합회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뷰티업계 전체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중 회비를 내는 회원과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으로 구분할 수는 있지만 회원인지 아닌지의 여부로 구분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런 상황은 지역협회도 마찬가지다. S 주 협회의 경우 그 주에는 250여 개의 소매점이 있는데 협회원은 고작 25개 가게다. 고작 10%의 소매점이 100%의 대표권을 갖는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고, 협회라는 타이틀을 남용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250개 업소 중 최소 125개 이상의 업소가 회원으로 가입해야 지역을 대표하는 협회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자격이 주어지는 거다. 그렇게 많은 수의 협회원을 모집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보니 회비를 내는 정회원과 회비를 내지 않는 일반회원으로 대우해 주어야 협회라는 타이틀을 적법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총연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의 답은 이 질문을 던진 총회장단 임원이 제시해야 할 일이지 물을 일이 아니다. 이것을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협회의 지휘봉을 잡아야 하는 것이고, 총연합회는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그 답을 스스로 찾는 훈련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할 책임이 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휘봉을 잡게 되면 총연합회의 존엄성이 허망하게 훼손될 수 있어서다. 충분히 준비할 여력이 없는 사람이 책임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업계를 지탱하는 기존의 다른 리더들의 머리를 빌려 검증된 방향으로 안전하게 끌고 나가야 할 책임도 있다. 그래야 회원들이 입을 다물고, 귀를 닫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고, 총연합회로 다시 관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익명의 원로는, “참으로 안타깝다. 총연합회가 해야 할 산적한 일은 모두 내팽개쳐 두고, 고작 트레이드 쇼나 하는 집단인 줄로 착각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총회장이 고집을 버리고 귀를 열어야 할 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그렇다고 두 개의 총연으로 다시 나뉜다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할 일이다. 새로운 총연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총회장에게 조금은 더 시간을 주고 총회장 스스로 비상 기구 설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원로의 의견은 달랐다. “지금의 총회장단은 바닥 난 협회 자금을 어렵게 회복시킨 공이 크다. 공이 큰 만큼 총연합회가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주권을 내려놓고 싶겠나? 고쳐서 쓸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빨리 새로 만들겠다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거는 미래의 서막이라 했다
미국에는 수백 개의 실업인 단체가 있다. 대다수의 단체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한인사회에도 수많은 단체가 있다. 한인 단체는 반대다. 시작은 크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회원이 줄어들고 역할이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나 홀로 회장인 단체로 남고 만다.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벌어진다면 단체의 목적과 운영방식, 회원 관리 등의 문제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고쳐보려는 노력도 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거듭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만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고집을 넘어 소꿉장난처럼 흉내만 내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어른들의 놀이라고밖에는 설명이 불가하다. 뷰티서플라이 산업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만들어 낸 엄청난 업적이다. 세탁업, 식품업, 봉제산업 등은 다른 민족이 개발해 놓은 것을 우리가 잠시 얻어 왔다가 다른 민족에게 넘겨준 것이지만, 지금 형태의 뷰티서플라이는 60여 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선배 뷰티인들의 피와 땀으로 개발한 순수 우리 것이다. 이 산업을 지키고 키워나갈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고 각 지역 협회와 총연합회가 굳건히 존재해야 할 이유다.
생각해 보면 협회는 봉사자들에게 귀찮은 일이고 부담스러운 존재다. 별 소득이나 보람도 느끼지 못하면서 각자 자비를 들여서 모임에 가고, 탁상공론을 거듭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만 상하는 공허한 일로 느껴질 수 있다. 마음이 상처받거나 피로감이 쌓이면 애정은 무관심으로 바뀌고, 결국 입과 귀를 닫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커질 수도 있다. 열심히 봉사하고도 칭찬은커녕 욕먹기 바쁜 것도 단체 일이다. 하지만 협회는 성과 여부를 떠나 산업 시스템의 뼈대다. 그것이 무너지면 선배들이 쌓아놓은 공든 탑을 우리 손으로 무너트리고 후배들에게 빈손만 남겨주는 씻을 수 없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교회나 절에 갈 때는 그곳에 있는 사람을 보지 말라는 말도 있다. 사람을 보면 실망과 갈등이 생기지만 교회나 절의 정신인 절대자만 보고 가면 실망과 갈등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벼운 것이란 가르침도 있다.
현재의 총회장에게 모든 탓을 돌려서도 안 된다. 빈털터리로 만들어 놓은 직전의 총회장을 탓하는 대신, 빈털터리가 된 총연합회를 불과 1년 만에 소생시키고 곡간을 힘들게 원상으로 채워놓은 사람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팬데믹이라는 난관에 부딪혀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도 총회장은 빈 곡간을 채우기 위해 1년 중 2개월이나 집과 사업체를 비우고 총연 업무에 매진한 공도 크다. 그런 희생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받고있는 상처라서 아픔도 클게 분명하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던 사람들이 무엇인가 얻어갈 것이 생긴 뒤에 나타나 목소리를 높일 때 받는 실망감은 부처님이라도 감추기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그렇게 어렵게 세운 공인만큼 결과도 좋아야 한다. 결국 남는 건 이름 석자 뿐이니까. 업계의 원로와 선배,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만나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보여줄 필요도 있어 보인다.
새로운 총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진심도 고귀하다. 고쳐서 쓸 수 없다는 그들의 절망감을 위로해 줄 필요도 있다. 새로운 단체를 준비 중인 한 관계자는, “협회의 어떤 자리도 영구적이지 않다. 고작 몇 년이라는 제한된 기간만 봉사할 수 있는 곳이 단체다. 죽기 살기로 싸워 얻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오로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뿐이다. 우리 업계의 주권을 지킨다는 목적만 같다면 누구든, 언제든 마음을 열고 대화할 마음이 있다”고 거듭 반복해 말했다. 이들의 진정성과 공로도 크다. 이럴 때 업계의 어른, 선배들이 조금만 나서 준다면 분열 없이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부족했던 것은 채워서 미국 사회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총연합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한인 뷰티산업은 도소매 매출을 합쳐 약 50억 불 규모다. 6조 3,000억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실업인 단체는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 같아서는 안 된다. 산업을 위한 이성적이고 전문적인 조직이어야 마땅하고 개인감정을 남발할 곳은 분명 아니다. 산업의 규모에 맞는 품격과 본인들이 서 있는 자리가 사업이라는 이성적 무대라는 사실을 바로 본다면 지금 처한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코스모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