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K-뷰티와 뷰티서플라이

뷰티서플라이 잡지를 운영하다 보니 K-뷰티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는다. 한국의 브랜드 회사로부터 상담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대기업의 유료 자문도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K-뷰티에 대한 글을 쓰는 데 늘 조심스러웠다. 어느 쪽으로, 어느 높이로 튈지 예측조차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괜히 K-뷰티에 대해 섣불리 발언했다가, 많은 회사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만들 수도 있고, 부푼 꿈을 악용해 이득이나 취하는 파렴치한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늘 말을 아껴 왔다. 그러나 동시에 미주 뷰티산업의 유일한 연구소를 자처하는 코스모비즈 발행인으로서 침묵만을 선택할 수도 없어, 조심스럽게 펜을 들게 되었다.

K-뷰티, 미국에서 성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 성공하는 브랜드는 나타날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은 점점 달라지고 있고, 전통적인 광고에서 벗어나 인플루언서 기반의 소셜미디어 마케팅이 대세가 된 지금, K-뷰티가 레거시 브랜드의 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기는 어렵겠지만, 틈새시장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의미 있는 성공사례를 만들어낼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폭발적 반응’은 가능하더라도, ‘지속적 성공’은 어려울 수 있다. 한순간 주목을 받는 제품은 나올 수 있지만, 그 관심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인플루언서의 포스팅 하나가 viral을 일으켜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생길 수도 있다. 그 제품이 아마존에 올라가 수천 건의 주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viral 현상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주문이 몰렸을 때 현지 인벤토리를 확보해 둘 수 있느냐는 더 큰 문제다. 물론 국제 항공 운송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배송비와 기간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최근 실리콘2라는 도매회사가 미국 현지에 진출한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매우 좋은 투자다. 설령 이익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K-뷰티의 미래 가능성을 높이는 데는 꼭 필요한 진입이었다고 본다.

다만, 유통이 목적이었다면 이미 시장에 자리 잡은 지니, 벤즈, 뷰티엔터프라이즈 같은 강력한 도매망이 존재하는데 굳이 또 하나의 유통 채널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실리콘2가 마케팅 서비스까지 통합 제공한다면 차별화가 가능하겠지만, 단순 유통 기능만으로는 현지 도매업체들보다 유리하다고 보긴 어렵다.

‘한 방’의 지속 가능성

소셜미디어의 특성상 어제는 A 제품이 최고였다가, 오늘은 B 제품이 최고일 수밖에 없다. 인플루언서도 플랫폼 알고리즘도 변덕스럽다. 오늘은 아마존 첫 페이지에 노출되더라도, 내일은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대부분의 viral 제품은 성냥불처럼 반짝하고 꺼진다. 그래서 K-뷰티의 미국 성공 가능성을 쉽게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누가 K-뷰티를 소비하는가?

한국에서 ‘한국인’이라 말하면 소비층이 금방 떠오르지만, 미국은 다민족 국가다. ‘미국인’을 말할 때도, 동양계, 중동계, 히스패닉, 흑인(미국계 흑인 vs. 아프리카계 이민자), 심지어 히스패닉계 백인까지 세분화해야 할 만큼 다양하다. 현재 미국의 전체 인구 중 백인을 제외한 비백인 인구는 약 1억 4천만 명으로, 일본 전체 인구보다 많다.

그래서 K-팝의 소비층 분석이 힌트가 될 수 있다. 물론 유럽계 백인 여성 중에도 K-팝과 K-뷰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매우 작은 소수다. K-팝을 적극 소비하는 층은 대부분 유색인종일 가능성이 높다. K-뷰티도 이와 유사하게, 백인 주류 시장보다 유색인종 커뮤니티에서 먼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민족을 하나의 제품으로 만족시키고 지속적인 브랜드로 키워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만일 미국 진출이 '국제적 인지도 확보'라는 상징적 성과를 만들기 위함이라면, 그 자체로도 마케팅 가치는 충분히 높다. 다만 그런 목적이라면, 현지 유통 자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온라인 중심의 전략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괜히 오프라인 시장까지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철수하게 되면, 남는 것은 재고 부담과 신뢰 상실이라는 흉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망의 벽

미국 유통의 가장 큰 특징은 거의 모든 소매점이 체인 또는 프랜차이즈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수십만 개의 매장이 있다 하더라도, 바잉을 결정하는 실제 바이어는 고작 20~40명 정도일 것이다. 이들을 만나 제대로 제품을 설명할 기회를 얻는 일도 어렵지만, 설령 만난다고 해서 쉽게 입점이 이루어질까? 레거시 브랜드들이 이 시장을 그냥 놔두고 있을 리 없다. 로레알, P&G, 레블론 같은 대기업들이 아무 대비 없이 K-뷰티의 진입을 허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그래도 Ulta나 Sephora에 입점한 K-뷰티 브랜드도 있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말 지속 가능한 브랜드였다면, 글로벌 대기업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체인점들의 실제 주주가 누구인지, 어떤 회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법적 리스크와 기술적 장벽

화장품은 사람의 몸에 사용하는 제품이다. 베이비 파우더조차 수십억 달러 배상 판결이 나는 민감한 제품군이다. 미국에서는 법적 책임을 대비한 제품 설계와 보험이 기본이다. FDA는 사전허가제를 운영하지 않지만, 문제가 생기면 제조사에 전적인 책임이 부과된다. 소비자의 단순한 불만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현재도 영구염색약 관련 집단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 모든 리스크를 K-뷰티 기업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출을 말리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문제를 나열한다고 해서, K-뷰티의 미국 진출을 말리자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래도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다. 단,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에 기대는 진출은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K-뷰티 관계자들과 만나다 보면, 종종 “미국 뷰티서플라이 누구누구를 만났는데요”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굳이 묻지 않는다. 너무 뻔한 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마음을 감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믿는 경향이 강하고, 현실적인 조언은 괜한 비관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국의 유명 미용실 체인 관계자가 뷰티서플라이 업계 큰 행사를 후원하고 미국시장 진출의사를 밝혔다. 한국 회사 임원은 분명 백인시장이나 동양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후원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런데 왜 흑인 소비자를 대상으로한 행사를 후원했던 것일까? 그 자리에는 하필 흑인 뷰티산업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브르노 브러더스 대표가 있었고, 그가 “이제 한국인들이 흑인 미용실까지 넘보겠다는 거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일개 개인이 고작 몇푼의 행사 후원금이나 벌자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로 괜한 오해만 사는 일은 한흑갈등만 키우는 큰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같은 인사가 K-뷰티를 미국에 소개하겠다며 다시 등장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인 체인점 바이어는 어떻게 끌어오실 건가요?” K-뷰티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겠다는 그분의 말을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길 바란다. 만일 그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심으로 그 기획이 성공하길 바란다. 비아냥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뷰티서플라이 업계 전체가 신뢰를 잃을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K-뷰티가 공략하고자 하는 백인 소비자 시장과 흑인 소비자를 대상으로하는 뷰티서플라이 업계는 유통 구조상 연결고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뷰티서플라이 산업이 갖고 있는 시장경험과 하반구조는 K-뷰티에게 있어 필수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며, 결국 K-뷰티는 이 루트를 통해 미국 내 판로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규모로만 가능한 일이지, 뷰티서플라이 업계 내에서도 신뢰를 잃은 몇몇 인사의 허황된 이벤트로 될 일이 아니다. [코스모비즈, 장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