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디자이너 양성이 필요하다
가발산업의 핵은 디자인이다. 한인 주도의 가발산업은 지난 50년간 끊임없이 가발 스타일을 디자인했고, 그동안 축척한 가발 도면만해도 각 회사마다 수천개씩이다. 가발 디자이너에 대한 가치가 무시되고 디자인 무단복제가 판을 치면서 가발 디자이너는 하나둘씩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스타일을 디자인하는 대신 과거에 사용했던 도면을 재탕, 삼탕 끓이고 또 끓여 이제는 더 이상 끓일 것도 없는 한계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더 늦기 전에 신세대 가발 디자이너를 양성해 내야한다는 지적이다.
매일같이 찾아 오거나 방문하는 가발회사에 묻자. 회사에 가발 디자이너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느냐고. 있다면 정말 있는지까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그것이 가발산업을 지켜내야 살수 있는 뷰티서플라이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업계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독자들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문 가발 디자이너를 두고 있는 회사는 겨우 한손으로 꼽을 수 있는 극소수라서 그렇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문이 들 것이다. ‘디자이너도 없는데 어떻게 매달 새로운 스타일의 가발을 가져 오는 것이지?” 오랜세월 가발은 공장의 디자인 개발실에서 디자인되어 미국의 가발회사에 샘플이 보내어지고 가발회사는 공장이 만들어 보내오는 스타일을 골라 주문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없이도 장사를 잘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장도 디자인의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에서도 주로 오지에 위치한 공장에서 일하겠다는 디자이너를 찾기도 어려워졌고, 가격경쟁을 부추기는 소매점과 그런 소매점을 핑계로 가격을 치기만 하려는 가발도매업체 덕에 공장의 이윤이 터무니 없이 낮아 디자이너 양성은 오로지 꿈과 이상일뿐 현실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공장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스타일을 약간씩 바꾸어 재탕, 삼탕을 반복하게 되었고 소매점은 그런 가발을 신제품이라 믿고 소비자를 대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이라도 했었던 것처럼 오랜세월 디자이너에게 대대적인 투자를 한 회사가 있다. 바로 미드웨이 Bobbi Boss 다. 미드웨이사는 써니 신 상무를 중심으로 그레이스 오, 오드리 한 디자이너를 모두 이사급의 고위직에 앉히고 디자인에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세 명의 디자이너는 각각 수십년씩 가발만 다루어 온 업계 최고의 베테랑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모여 만들어 낸 디자인이 바로 Yara다.
소비자들은 Yara의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디자인에 환호를 보냈고, 지난 반세기 가발역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Yara의 폭발적인 인기는 시리즈로 만들어져 나오고 있는데 지금 까지도 내놓는 스타일마다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백인 가발업계의 절대 강자인 아데랑스사는 이번 달에 창사 50주년을 맞았다. 연매출 12억불로 한인 가발산업을 다 합친 액수보다 큰 규모다. 현재 57개국에 진출하여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가발을 디자인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런 아데랑스도 최근에 들어 가발 디자인 기능을 확대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사 50주년을 기해 미국에 디자인을 총괄하는 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할 계획이라는 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각 나라에서 활동중인 아데랑스 디자이너들 간에 보다 적극적인 콜라보래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미용을 배우는 젊은이들 중에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인재를 발굴해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이너를 양성해 내겠다는 계획이라는 짐작이다.
메이저급 헤어회사들도 최근에는 위빙제품의 판매가 저조해진 반면 가발판매가 늘어나고 있어 앞다퉈 가발 디자이너 확보에 나서는 분위기다. 일부 회사는 이전에 인도네시아 등에서 활동했던 디자이너를 스카웃 하거나 흑인 스타일리스트를 영입해 가발 디자인 업무를 맡겨 보기도 한다. 흑인 미용사가 흑인 소비자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최적의 스타일을 개발해 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을 수도 있지만, 가발을 좋아하는 것과 가발을 디자인하는 일은 크게 달라 기대 만큼의 결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드웨이 Bobbi Boss의 Yara 시리즈를 잘 들여다 보면, 전체적인 스타일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이집션 컷트나 밥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Yara 시리즈에는 시대적인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만큼 디자인은 지나 온 가발 디자인의 변천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지향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상적 차원에서 깊이있게 느껴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다. 그저 소비자적 차원에서 이해도가 높은 흑인 미용사라 해도 한인 디자이너들 처럼 똑같은 과정을 통해 충분한 교육을 받아야 진정한 디자이너로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익명의 가발회사 최고경영인은, “이제라도 디자이너를 애타게 찾고 있는 회사는 그나마 양심있는 사람들이다. Soul Tress (이종시 사장)의 경우 소매점이 디자인을 지켜주지 못해 더 이상 개발의 가치까지 잃어버린 안타까운 일이고, 보양 (구영범 사장)이나 미드웨이 (정하석 사장)의 경우 아직도 디자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가발1세의 뒤를 이을 신세대 디자이너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되는 점이다. 서둘러 차세대 디자이너를 양성해 내지 못하면 가발을 갈망하는 소비자를 실망에 빠트려 그나마 가발까지 잃게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차세대 가발 디자이너는 한 회사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가발 도매업체와 소매점이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2018년 4월호, 코스모비즈]